극동의 미래
桃井恵一・都祐一공역 申燦湜 감수
At Lefcas, Greece 日野雅之氏촬영 |
현재와 관련지어 미래를 생각하는 일은 문명발달에 있어서 매우 필요한 일이다. 문명국의 극히 평범한 노동자라도 돈을 벌면 함부로
소비하려고 하지 않으며, 사려 깊은 사람이라면 번 돈을 대부분 장래를 위하여 저축해둔다. 그야말로 가장 흔한 미래의 대비이다.
정치인이라면 보다 높은 차원의 전망을 한다. 그가 어떤 법률안을 제출한다든지, 또는 반대한다든지 할 때 「자신이 죽고 백년이 지난
뒤 이 법률은 어떠한 결과를 낳을까」를 생각한다. 철학자는 보다 멀리 더 나은 장래를 보는 안목으로「현재 상황의 결과는 천년 뒤
어떻게 되어 있겠는가?」라고 자문하고, 한 나라만이 아닌 전 인류를 생각한다.
동양의 미래에 관하여 나는 여러분에게 서양 철학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싶다. 일본만이 아닌 또한 극동만도 아닌 전인류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먼저, 극동의 미래는 서구의 움직임에 부분적이기는 하나 좌지우지 된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적어도 다음의 사실은 분명하다.
극동에서 일어나는 군사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대변동은 서양의 영향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 서양의 극동에 대한 영향은 침략적이며, 피할
수 없다. 이는 몇 세대가 지나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미래의 동양에 대하여 생각하기 전에 먼저 현재의 서양의 현상을 고찰해보자.
19세기 서양 산업문명의 진보와 관련된 중요한 사실은 서양제국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였다. 1801년 영국 그레이트 브리튼의 인구는
16,345,646명이었다. 1892년에는 그 인구가 37,787,953명으로 늘어났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또 한번 놀랄만한
숫자가 된다. 엘리자베스 여왕(재위1558∼1603) 통치시대의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인구는 5,600,517명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재위1837∼1901)시대에는 29,001,018명 이었다 (1892). 그러나 1892년의 인구에는 캐나다, 미국 남부,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남아프리카에 사는 영국인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이 이외 50개 지역에 거주하는 영국인도 물론 포함되어
있지 않다.기봉(英1737∼1794) 이 역사책을 썼던 당시의 독일 인구는 약 2,200만 명이었으나 지금은 4,950만 명이다.
프랑스의 인구는 2,000만 명이던 것이 1893년에는 38,218,903명이 되었다. 이탈리아의 인구는 불과 1,000만 명
정도였으나, 현재는 3,00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스페인의 인구는 800만 명 정도였던 것이 지금은 1,750만 명이다. 러시아(유럽만)의
인구는 1,200만 명이었으나 지금은 폴란드와 핀란드를 포함시키지 않더라도 8,100만 명이다. 러시아는 계속된 정복으로 인구가
늘어나 1억 300만 명을 넘어섰다. 요약하면 1719년부터 70년간 유럽 인구는 두 배가 되었다. 그리고 19세기에는 또 두
배를 훨씬 넘는 숫자에 도달했다. 다시 명기해두고 싶은 것은 유럽 민족은 북미에 약 7,000만 명의 인구를 이민시켰고, 더군다나
최근에는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외에도 세계각지에 이민을 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국 지배하에만 해도, 즉 현재의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만 해도 약 3억 4,400만 명의 국민이 존재한다.
서양민족이 이처럼 대발전을 이룬 의미는 무엇인가? 고대로마 제국의 총인구는 짐작컨대 1억 1,00만 명이 조금 넘는 정도였을
것이다. 흄(英1700∼1776)도 기봉도, 아우구스투스(재위 BC30∼AD14)황제 시대의 고대 유럽의 인구는 18세기 유럽의
인구보다 많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유럽의 인구는 현재, 고대유럽의 3배나 되며, 최대의 증가는 극히 최근 백년 이내의 일들이었다.
원인은 무엇인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 원인은 분명히, 하나는 산업과 기술의 진보, 또 하나는 의학(생명유지, 건강관리방법)의 발달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농업의 개량, 어떠한 위생학상의 발견, 어떠한 과학이나 산업상의 발명도 그것만으로는 인구 증가의 원인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로마제국의 지배 하에서는 아마 그 토지로는 먹여살릴 수 없을 만큼의 인구를 안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오늘날 그 인구는 로마 시대의
3배로 늘었으나 토지는 3배의 식량을 생산하지 못함이 확실하다. 사실 서양은 현재 자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단지 외부로부터
식량원조의 방법을 찾았기 때문에 인구가 증가한 것이다. 유럽인의 생활은 인위적이며 엄밀하게 말하자면 자연스럽지 못하다. 아마 러시아만은(스칸디나비아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 자국 주민의 식량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의 대부분은 러시아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의 덕택에 먹고
살고 있다. 북미, 인도, 호주, 자바, 캐나다, 남미, 중국, 일본, 페르시아 등 세계 각지로부터 식량을 공급받고 있다. 런던
시민은 여러 외국의 원조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을 것이다. 영국이 전쟁으로 식민지를 잃거나 경쟁으로부터 무역권을 상실할 경우,
가장 큰 공포는 기아이다. 대니슨 경(英 1809∼1892)마저도 《함대》라는 제목의 발라드 (ballad)에서 ‘굶주리다’라는
노골적인 말을 서슴없이 사용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굶게 될 때 광기어린 수백만 시민의 발길이 당신을 당신의 지위에서 내쫓을 것이다.”
만약 유럽이 돌연 여러 나라로부터 음식을 얻는 수단을 빼앗긴다고 한다면 틀림없이 수천만의 사람들이 아사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이 음식의 공급을 유지할 것인가? 이는 통상무역과 쾌속기선과 고속통신에 의하여 해결된다. 끊임없이 인구는 증가하고 보다
빠른 기선이 건조되어 신규 통상 사업이 시작되고, 신 식민지가 건설된다. 이러한 새로운 필요에 쫓기어 서양은 살아 남기 위해 다른
모든 나라에 원조를 강요하고 있다. 이미 서양의 산업문명은 온 세계로 널리 퍼져가고 있다. 오늘날 그 압력의 상륙을 중국이나 일본에서
느낄 수 있다.
서양에서는 인구증가를 이민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그 목적이 달성될수록 원만한 이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결과 생존경쟁은
격화되고 갈수록 인류의 생존은 어려워진다. 서양이 세계로 확대되고 진보하는 것은 서양의 힘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에 따른 지구상의
모순도 격화되고 있다. 이는 서양문명의 약점 또한 동시에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진보는 필연적이다. 다툼이나 노동의 고통이
좋아서가 아니다. 노동을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몇 나라에서는 진보가 전혀 없다. 과학, 기술, 공업의 경이적 발달은---세계를
연결하는 전신, 수많은 철도망, 수치 제어에 의한 기계 제작, 화학의 응용에 의한 다수의 신물질 창조 등--- 어느 것이나 생존의
필요성, 즉 뭔가 먹을 것을 찾아야 하는 필요성의 결과에 불과하다. 어떠한 종류의 진보일지라도 그 원동력은 오로지 배고픔이다.
이것이야말로 영원의 법칙이다. 서양민족이 전세계에 펼쳐가려는 것은 단지 생존의 필요에 따른 것이다. 그것이 빠르게 퍼진 것은 금세기에
이르러 그 방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전 같았으면 제 나라에서 굶어 죽었을 것이다.
그들은 가는 길을 막는 무수한 자연의 장애에 부딪쳤다. 살인적인 기후인 열대 지방에 이주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주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들은 원주민의 인구를 격감시켰다. 그들의 눈앞에서 원주민의 모습이 사라진 것이다. 미국에서는 미국 인디언이,
태평양제도에서는 마오리족이, 타스마니아에서는 타스 마니아인이, 호주에서는 호주 원주민이, 또 스페인계의 혼혈인종까지도 뉴멕시코나
텍사스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인도는 물론 저항을 하고 있다. 서양은 결코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도
특유의 기후가 원주민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양의 산업주의가 극동, 다시 말하면 중국에 도달했을 때는 그 이상의 진출이 자연환경의 장애와는 또 다른 것에 의하여
가로막히게 된다. 서양이 지금까지 생각치 않은 지혜와 능력에 의한 저항을 받았다. 중국을 정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가능하였다고
하더라도 막대한 경비가 소요되었을 것이다. 서양의 풍속, 습관, 신앙을 강요하여 중국을 약체화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다. 중국은
너무나 거대한 견고함 그 자체로, 파괴도 개조도 되지 않았다. 중국은 저항을 했던 것이다. 서양이 중국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무역뿐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서양 과 중국간 무역이 시작되었다. 이 무역은 서양이 무리하게 강요한 것이었다. 서양의 상인들은
처음에는 중국인을 업신 여겼지만, 실제로는 그들과 대등하게 거래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애써 이룬 중국무역을 중국인 수중에서 빼앗을
수도 없었다. 지금도 중국인의 수중에 있고 앞으로도 중국인 수중에 머무를 것이다. 대등은 고사하고 자신들보다 한수위라는 것, 국가간
무역처럼 이른바 ‘최고형태의 경제 협력’ 에 있어서도 매우 어려운 경쟁 상대라는 것을 깨달았다.
중국인이 이전에는 위험하지 않았다고 여겼다면 이는 단지 자국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양이 중국에 개항을 강요한 후,
중국인은 외국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중국인은 남북미의 태평양 연안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서인도 제도로도 건너갔다. 호주와 자바에도
이주했다. 중국인은 영국의 동방 식민지의 최고 중요거점의 하나인 싱가폴에도 차이나타운을 만들었다. 중국은 동양을 점거할 것 같은
세력를 보였다. 서양의 식자(識者)들은 중국을 그냥 두는 편이 좋았을 것이라고까지 말하기 시작했다.
최초로 위협을 느낀 나라는 미국이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중국인과 경쟁이 되지 않는 것을 알았다. 중국인은 상업을 흡수하고 무역을
독점하며 경쟁 상대의 노동자를 그 시장에서 추방했다. 혁명, 폭동, 학살이 일어났다.
점차 서양 제국은 위협을 느껴, 미국에서는 2년전 중국인 이민을 금지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미국인은 상업이나 산업으로는 중국인과
경쟁이 안 되는 것을 깨달 았기 때문이다.
호주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중국인의 호주 이주를 방지하지 않으면 영국인은 그 곳에서 생활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호주는
중국인의 이주를 배척하는 법률에 의해서 방위가 되었다.
자바에서는 화란인 이주자가 특별한 위협을 느꼈다. 화란인 이주자들은 중국인을 습격하여 5천명 이상을 죽였다. 현재 중국인은 일정한
제한하에 자바 거주가 허락되었으나 그 결과 자바인은 점차 그 모습이 줄어가고 있다. 중국인은 어떤 기후에도 견디며 어떤 상업상의
경쟁에도 이기기 때문이다. 자바의 기후는 유럽인에게는 너무도 가혹하여, 화란인은 중국인의 정착을 허가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하여 중국인은 서양인과 이런 경쟁이 가능한가? 일부는 그들의 지혜에 의한 것도 있겠지만, 그것 보다는 대부분 그들의 지독한
절제, 검약 생활에 의한 것이었다. 서양인보다 적어도 십분의 일 정도 낮은 수준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서양의 어떠한
대자본가도 당해 낼 수 없는 경제적 힘을 중국인은 갖고 있었다. 장인(匠人)으로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서양의 장인들이 하는 일들은
무엇이든지 자신의 손으로 능숙히 처리할 뿐더러 더욱이 반액 이하의 경비로 일을 해치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만약 중국인이 서양의 산업기계와 과학지식을 경쟁에 이용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서양인에게는 큰 위협이다. 그것은
서양의 통상이 동양으로부터 추방되는 것을 뜻한다. 아니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서양의 인구가 2배, 3배, 4배가
되고, 서양이 계속 확대되는 동안 동양은 거의 정지 상태였다. 그러나 서양이 동양의 문호를 개방하려고 할 때 가늠할 수 없었던
지대한 활동적인 세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양도 팽창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양이 자신들의 발전을 위하여 서양의 기계기술을
도입하게 되면, 서양은 50년 전에 꿈도 꾸지 못했던 위험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서양이 대단히 다행스럽게 생각했던 것은 중국의 움직임이 느리다는 것이었다. 중국은 현재 서양제국의 산업방식과 기계장치를 아직
조금도 쓰지 않고 있다. 단지 전쟁을 대비하고 있을 뿐이다. 러시아의 위협 때문에 중국은 영국과 동맹을 맺었다. 영국은 반 러시아로서
중국을 지지하고, 그 대가로 중국은 인도를 러시아로부터 방어하려는 영국에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영국장교는 중국에 서양의 군사기술을
지도하고 있다. 중국의 공장은 지금 최고급의 소총을 생산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120만 명의 병력동원이 가능하며, 이들 모두가
서양의 군대처럼 무장, 훈련된다면 어떠한 열강도 감히 중국을 공격하지 못 할 것이다. 결국 중국은 서양의 과학과 산업을 언젠가는
도입할 것이 확실하고 이것이 서양에게는 최대의 위협이 될 것이다. 민족의 미래가 결정되는 것은 전쟁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산업과 과학의 경쟁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상업의 지혜가 최고의 덕목은 아니다. 최고는 과학적 지능이다. 중국은 이 방면의 재능을 아직 나타낸 적이 없다. 그러나 이를
나타내고 있는 다른 민족이 동양에 있다. 그것은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과학, 기술, 예술 등의 지적 분야에서 서양과의 경쟁이
가능함을 실증하고 있다. 일본인은 상인으로서는 중국인과 대등하다고 여겨지지 않지만 딴 분야에서는 훨씬 수준이 높은 민족이다. 나는
일본 국민의 정서에 아첨하는 것 처럼 여겨지고 싶지 않다. 과학기술, 예술 등의 연구분야에서 일본인은 서양과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을
실증했다고 앞서 말했지만 현재의 일본의 지적 수준이 영국이나 프랑스와 동등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의
과학자가 독일, 미국 그 이외의 여러 나라에서 성공을 거둠으로써 최고수준의 재능을 갖고 있는 것이 충분히 증명되었다. 그것은 아직
대부분 잠재적, 다시 말하면 미개발, 미발전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개발, 발전은 단지 시간 문제일 뿐이다. 그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중국과 일본은 나란히 극동을 대표하여, 통상에서도, 민족간 지적 투쟁에서도 서양과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점은 지적능력만이 아니다. 대 국제관계활동의 필요성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중국도 일본도 자기 방위를
위하여 서양과 경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산업의 발전은 동양, 서양 쌍방에서 계속될 것이며 인구도 틀림없이 함께 늘어난다. 세계는 단지 일정한 인구, 아마 20억에서
30억 명 밖에 부양할 수 없지만, 생존경쟁은 틀림없이 계속될 것이고, 그 경쟁이 격해질수록 전세계를 재패하려는 분쟁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 결과 약소 민족은 도태될 것이다. 어떻게 도태될 것인가? 즉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서구와 동양
중, 어느 쪽이 살아 남을 것인가?
그것은 경제적 문제이며 경제가 이를 대답할 것이다.
두 민족간의 싸움에서 한쪽에 지혜와 능력이 있을 경우, 당연히 지력이 우수한 쪽이 정복한다. 즉 무지한 민족은 멸망하며, 경우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그 싸움이 대등한 민족간이라면 싸움 없이 연합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두 민족의 지력이 비슷할 경우,
인내력과 경제적 능력에 차이가 있다면, 보다 인내력이 강하고 보다 검약 능력이 있는 민족이 이기는 것은 확실하다. 이를테면 중국의
장인이 영국의 장인과 같은 수준의 일을 해낼 수 있으며, 게다가 5분의 1이나 저렴한 생활이 가능하다면 영국인 장인은 시장에서
추방될 것이다. 고도로 재능이 특출한 민족일지라도 훨씬 적은 비용으로 생활할 수 있는 대등한 지력의 민족에게는 생존경쟁에서 진다.
즉 지구상에서 추방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증기엔진을 하나 산다고 하자. 같은 마력의 두 증기엔진을 봤다고 하자. 하나는 두 배의 석탄이 필요하고,
그것을 작동시키는데 두 배의 경비가 든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느 쪽을 살 것인가? 물론 연비가 좋은 쪽을 살 것이다.
인체에도 하나의 엔진이 있으니 그것을 움직이는 연료는 음식이다. 우리들은 거의 모든 진보는 식량의 문제에서 일어나는 것을 봐왔다.
생존의 곤란, 즉 식량을 구하는것의 어려움이 대부분의 노력노고의 근원이 되었다. 서양인의 몸을 한 엔진으로 또 하나의 엔진을 동양인의
몸으로 예를 들어 비교해 보자. 이 두 개가 거의 같은 양의 일을 한다고 가정한다면 이 둘의 상대적 가치는 연료비용에 의해 결정된다.
한 사람의 영국인이 생활하는 데는 적어도 동양인의 7∼8배의 비용이 든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판단하겠는가?
이것은 아주 사소한 일례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히 일상 필수품 뿐만이라도 서양민족의 생활비는 동양민족의 생활비보다 적어도 4,
5배가 든다. 생필품 뿐 아니라 서양의 실제 생활비는 서양의 어느 나라와 비교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동양의 20배, 30배, 50배가
들기도 한다. 그래서 서양의 어느 민족도 여러 동양인이 생활하는 조건에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굶어죽을 것이다.
그들의 필수품은 단지 현대 생활습관의 산물일 뿐 아니라 그 민족 전래의 필수품이기 때문이다. 매를 쌀로, 이리를 짚으로 키울 수
없는 것처럼 서양인은 동양의 음식으로 살아갈 수 없다.
음식을 제일 첫째로 생각해야 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것은 아니다. 고장이 다르면 언어, 풍속, 습관이 달라지듯이 민족이 다르면
생활을 즐기는 방법이 달라지고 다른 조건을 필요로 한다. 서양의 민족은 비싼 음식 이외에도 고가의 취미 오락 등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른바 ‘풍요로운 삶’(large living)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는 중세 이래 유럽 빈민의 생활상태가 어떻게
개선되었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중세에 있어서 유럽인은 동양인의 생활양식에 따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까닭은 생리적 요인 뿐만이
아니고 심리적 요인에도 있다. 유럽인의 정신적인 행복에 필요한 몇 가지 조건을 빼앗긴다면 서양인은 쇠약해지고 인구는 감소하며 생활의욕을
거의 상실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동물학에서 멸종한 동물의 글을 읽은 적이 있을 것이다. 고대에 적을 겁낼 필요가 없고 더위, 추위, 한발 등에 의해
멸종되지 않을 만큼 요행하고 놀랄만한 동물이 이 지구상에 존재했다. 이 가운데 생존하는데 너무 많은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멸종한
것도 있다. 지구는 이 동물들을 먹여 살릴 수 없을 때가 온 것이다. 그래서 육체에 관한 한 인간도 동물도 같은 운명에 서서히
닿을 것이다. 생활비가 너무 많은 것만으로도 멸망하는 민족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서양과 동양이 장차 경쟁할 경우 분명한 것은 가장 인내심이 강하고, 가장 검소하며, 가장 소박한 생활 습관을 가진 민족이 살아
남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비용이 많이 드는 민족은 모두 소멸할 것이다. 자연은 위대한 경제가이며 결코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생존 최적자는 자연과 가장 잘 공생하며, 최소한의 생활에 만족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우주의 법칙이다.
현재 영국의 청년교육비는 일본 돈으로 1만6천엔에서 2만엔 사이이다. 그 영국의 교육을 일본에서는 반액 이하로 받을 수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교육 문제만 봐도, 동양은 서양의 강력한 경쟁 상대가 될 것이다.
끝으로 나는 일본의 빈곤은 강점이라는 것을 굳은 신념을 갖고 감히 설명하고 싶다. 풍요는 미래를 약체화 시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여러분은 ‘빈곤’이란 말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다음과 같은 일을 상기해주기 바란다.「유럽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는 러시아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너무도 강하기 때문에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삼국이 각기 자국을 지키기 위해 동맹을 맺고
있다는 것, 그리고 전세계가 러시아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가난하지만 유사시에는 언제든지 600만 명의 기병을
소집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일본도 가난하기는 하나 장차 적어도 300만 명의 강병을 방위를 위해 동원하지 못 할 리가 없다.
또한 미래는 서양이 아닌 극동의 편이라고 나는 믿는다. 적어도 중국의 경우에는 그렇다고 믿는다. 일본의 경우는 위험성이 있다고
느껴진다. 예로부터 지켜온 검소하고, 건전하며, 자연스럽고, 절도 있는 성실한 생활방식을 버릴 위험성이 있다. 나는 일본인이 그
검소함을 지니고 있는 이상은 강력하나, 만약 외래문화인 낭비지향 사상을 받아들인다면 쇠퇴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극동의
현인인 공자(孔子), 맹자(孟子), 석가모니 모두「낭비를 피하고 극히 평범한 즐거움과 지적 오락으로 만족하는 것이야말로 백성의
힘과 행복을 위하여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생각은 오늘날 서양의 사상가의 사고이기도 하다.
자, 여러분 이런 -- 단지 내 자신의 생각만이 아니라 내가 도저히 따를 수 없는 현인들의 -- 생각을 말하고 있는 가운데 나는
소위 ‘규슈(九州)혼’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검소한 습관과 성실한 생활은 옛날의 구마모토(熊本)의 미덕이라고 들은바
있다. 그렇다면, 장차 일본이 위대한 나라가 되고 안되고는 -- ‘규슈(九州)혼’ 또는‘구마모토(熊本)혼’ -- 즉 소박, 선량,
검소함을 소중히 하고, 필요 없는 사치와 낭비를 멀리하는 정신을 얼마나 지켜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씀 드리며 결론 짓고자 한다.
THE FUTURE GREATNESS OF JAPAN WILL DEPEND ON THE PRESERVATION OF THAT KYUSYU OR KUMAMOTO SPIRIT-THE LOVE OF WHAT IS PLAIN AND GOOD AND SIMPLE, AND THE HATRED OF USELESS LUXURY AND EXTRAVAGANCE IN LIFE Lafcadio Hearn January 27 18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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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fcadio Hearn 라프카디오 헌紀念石碑 熊本大學에서 |
머리말 (Korean translation) |
THE FUTURE OF THE FAR EAST (The original English) |
THE FUTURE OF THE FAR EAST (Japanese translation) |
THE FUTURE OF THE FAR EAST (Chinese translation) |